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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6 여기는 신촌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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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회 베이징올림픽이 그 성대한 막을 연지 하루가 지난 오늘, 대학원생이 계절학기를 들어야만 등록금 300만원을 세이브할 수 있는 사태를 일으킨 본인의 과오로 인하여 듣게 된 계절학기과목의 마지막 조모임을 위하여 신촌 스타벅스에 엉덩이를 붙이고 열심히 레포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스타벅스 2층 한 구석을 차지한 곳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10분에 한 번씩이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갔다한다. 내 바로 앞에 위치한 테이블이 비자 잽사게 내 앞쪽 테이블로 앉았다. 흰색남방에 요새 유행한다는 마이크로팬츠를 입고, 이쁘장하게 생긴 그 여자의 왼손에 들려진 루이비통가방이 무색해지는 영풍문고 쇼핑백이 오른손에 들려져 있었다.

 의아해 하던 찰나, 왠 땅달맞은 남자가 들어온다. 청바지를 입었으나 너무 긴 탓에 깔끔하게 접어올려 드러난 흰색에서 그의 세심함을 볼 수 있었고, 너무 더웠는지 2단 찍찍이가 부착된 샌들을 신고 있었다.  나는 순간 설마 했지만, 내 앞으로 오던 그 남자. 표정은 더위에 지쳤는지 죽을 상이다. 반면 여자는 새글새글 웃으며 남자가 웃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남자 지갑만 테이블에 던져 놓고 무심히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3층으로 올라간다. 아무래도 3층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찾았나보다.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친구 앞에서 똥씹은 표정을 하면서 인사 한마디도 없이 홀연히 3층으로 갈 수 있는 남자는 무슨 배짱이 있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난 여자가 남자를 째려보거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것을 예상하며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맞닥들인 모습에 당황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고심하고 있던 중, 남자가 내려온다. 여자는 계속 새글새글 웃지만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여자는 그때 영풍문고쇼핑백을 들며,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무엇일까?

 "하악하악"

 이럴수가. 이외수의 하악하악이 나올 줄이야. 여자는 책을 건냈지만, 남자는 정말로 쌩깠다. 그 재밌는 책을 쌩까다니. 여자는 허망하게 다시 쇼핑백에 책을 넣고, 남자는 안경을 벗고 연신 눈을 비빈다. 여자는 안경을 집어들어 정성껏 닦는다. 여자는 나가자며 보채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다. 정말 한마디도 안한다. 몇분정도 지나더니 남자는 마지못해 일어나고 둘은 나갔다.

 사람을 외적인 것으로만 판단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평가할 때 가장 좋은 판단 기준은 점수다. 여자는 10점 만점에 8점, 남자는 5점을 줘도 너무 아까운 수준인데,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시츄에이션이 발생한 걸까. 분명 여자가 잘못을 해서 남자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입장인 것은 분명한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Posted by la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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