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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30 맹장염과 어른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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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충수는 위 사진과 달리 장 위로 감겨있었다고 한다.

 
 저저번주 내내 날 괴롭히던 배앓이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 것은 다름아닌 맹장염. 나는 평생 걸리지않아, 제발 재수없게 수술을 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며 빌었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덜컥 맹장염에 걸려버렸다. 그것도 맹장이 터져 복막염까지 걸린 상태였다니. 결국 저번주 월요일에 중대병원에 입원해서 남들 3일만에 나온다는 맹장수술을 받았지만, 나는 9일이나 걸려서 나왔다. 딱 3배다.

 남들 퇴원하는데 3일이면 충분한 것을 나는 9일이나 걸리는 이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다른 환자들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생 어디가 아파서 왔어 라며 물어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말에 당당히 맹장염이라고 대답하면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아파해 라며 나의 고통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식의 말들이 돌아왔다. 부연설명은 어머니에게 맡긴채 나는 누워버렸지만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걸 느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다 "전신성 복막염을 동반한 급성 충수염"에 걸렸다고 이야기하기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긴박감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다고 간단히 "맹장염" 해버리면 부가적인 내용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왜 사람들은, 특히나 어른들은 고정관념에 얽매여 사는 걸까며 다분히 정치적 의미가 섞인 푸념까지 늘어놓던 찰나.

 옆에 탈장으로 입원하였으나 변을 보지 못하여 나만큼이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간부로 있는 직장에 매년 각종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입들이 들어오는데 이 쌔삥이들이 처음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잘났다며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위에서 뭐라뭐라 하는 말에 듣는 시늉은 하겠지만 속으론 코웃음치며 자기의 생각대로 밀고 간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상사보다 더 좋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왔을테니까.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의 말로는 의기소침하여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회의까지 느낀다고 한다. 즉, 아저씨의 말의 요지는 어른말씀 잘 들어라 이지만, 그동안 젊은 혈기 운운하며 어른들은 너무 모른다며 잘난 척 해온 지난 날들이 부끄러웠다.

 9일만에 퇴원했지만 너무 누워만 있었는지 몸에 힘이 잘 안들어간다. 목표는 퇴원 다음날 출근인데, 얼굴도장만 찍고 집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들 건강조심.
 

Posted by la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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